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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간의 화성행차 – 정조반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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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7-%ec%a0%95%ec%a1%b0%eb%b0%98%ec%b0%a8%eb%8f%84%ed%91%9c%ec%a7%80

  • 최동군 지음
  • 신국판(152×225mm)
  • 360쪽, 국문
  • 16,000원
  • ISBN 978-89-6801-050-7 (03910)

2016년 수원화성 축성 220주년을 맞아, 정조가 거닐었던 그 길을 따라가 봅니다!!

당대 일류 화가들이 그린 정조반차도와 함께 그 시절의 문화를 만날 수 있는,

8일간의 화려했던 행사가 눈앞에서 살아납니다.


정조반차도를 보면 말을 타고 행차하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그들을 자세히 비교해보자. 누군가는 혼자서 말을 몰고 가고 또 어느 누군가는
옆에서 말고삐를 잡아 끌어주는 사람이 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말고삐를 잡고 끌어주는 사람은 말구종(견마잡이)으로 지금의 운전기사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림 안에서 이 말구종이 붙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지위가 더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말구종 외에도 그 사람의 지위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그 주위를 호위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된다. 이렇듯 정조반차도에서는 주변인물들로 그 사람의 계급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조반차도에서 주목해야 할 점 중 하나는 ‘병조판서’이다. 일반적인 행차에서 병권의 상징인 병조판서는 왕의 가마 바로
뒤에 따라오며 병사들이 그 주위를 호위한다. 하지만 정조반차도에서 병조판서는 행렬 가장 후미에서 따라올 뿐만 아니라
자신의 휘하인 훈련대장보다도 의전이 초라하다. 이에 대한 이유는 그 당시 병조판서와 시대적 상황을 함께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때 병조판서직을 맡고 있던 이는 ‘심환지’라는 인물로 사도세자의 죽음은 정당하다는 입장을 표방하고 있던 노론 벽파 집단의 영수인 인물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정조의 미움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조는 공식적인 행사에서 눈에 띄게 그의 지위를 격하시킴으로써 그와 노론 전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은 단순히 반차도 그림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 속에 숨어있는 18세기 조선의 사회상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개혁군주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화성으로 가는 길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지만 정조가 서울에서 화성까지 행차하면서 느꼈을 자부심을 생각하며 그가 품었던 원대한 꿈의 길을 따라가보는 건 어떨까?


정조반차도란 1795년(을묘년)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입니다.
이 잔치를 위해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화성으로 행차하게 됩니다. 화성은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동갑내기인
생부와 생모의 회갑연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화성에서 행사를 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행사는 총 8일에 걸쳐 시행되는데 정조반차도는 서울에서 수원을 오갈 때의 사람들의 행렬을 상세히 그려놓은 그림을 뜻합니다.
현재 이 그림은 청계천에 도자로 새겨진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본 서의 서두에서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반차도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사전지식들을 알려줍니다.

정조반차도는 특정 지점을 가리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본서에서는 행렬의 중앙지점에 주목할만한 등장인물이나 사물들을 간이인덱스로
지정하고 그 주변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간이인덱스는 총6개이며 이들을 중점으로 행차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정조반차도를 따라 여행을 떠나보시죠.

 

  1. 경기감사: 경기감사와 총리대신 주변

경기감사는 이 행렬의 목적지인 수원(화성)의 최고책임자로 맨 앞에서 행렬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의 앞뒤로 군뢰와 순시, 영기가 좌우로 배치되어 따라가며
왕의 갑옷과 도장을 실은 말들이 함께합니다. 이 말들은 반차도 행렬 중간중간에 수시로 등장하며 실제로 갑옷과 도장을 싣고 가는 말도 있지만
대부분이 의장의 하나로 사용되었습니다.

경기감사 뒤로는 서리, 장교, 총리대신이 차례로 따라옵니다. 서리는 관아에 소속되어 문서의 기록과 관리를 맡아보던 하급의 구실아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를 이르며 장교는 군사업무에 종사하던 군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리는 총리대신은 이 행차의 총지휘를 맡은 자로서 행사 참여 관리 중 가장 높은 벼슬의 사람입니다.

 

  1. 훈련대장: 훈련도감 주력부대 주변

총리대신 뒤를 이어 마병초관이 이끄는 ‘별기대84명오마작대’가 따르고 있습니다. 별기대는 기마병으로써 84명이 1줄에 5마리의 말로 편대를
구성하여 행차하는 모습인데 정조반차도에서는 84명을 10명으로 줄여 표현하고 있지만 청계천 벽화에서는 84명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별기대 바로 뒤에는 마병별장이 뒤따르는데 반차도 곳곳에는 초관과 별장이 등장합니다. 초관은 가장 하급장교이며 별장은 초관보다 벼슬이 더 높습니다.

마병초관과 마병별장의 앞쪽에는 인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인기는 행렬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인기는 상황을 보고받고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하던 깃발인데 사용하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색깔(오행에 따른 오방색을 사용)을 달리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마병별장 앞 인기 좌우에 나란히 있는 신기는 전쟁터에서 진을 칠 때 사용하던 것으로 인기와 마찬가지로 오방색을 사용해 구분했습니다.

별기대를 이어 육상전력의 핵심인 보군[보병]들이 행진하고 있는데 이 보군들 앞에는 고초라는 깃발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 깃발 또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던 것입니다. 보군들 행렬 속에 ‘파총’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파총은 종4품의 무관직으로 마병별장보다는 낮은 벼슬입니다.

파총 뒤쪽으로는 깃발부대와 취타부대가 따라오고 있습니다. 내포한 뜻이 각기 다른 색색의 깃발들과 궁중음악을 연주하는 악대는
구경하는 백성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을것입니다.

취타부대 뒤를 이어 중앙군영의 핵심인 훈련도감의 총사령관, 훈련대장이 등장합니다. 훈련대장의 의전행렬 가운데는 앞서 보지 못한 영전과 관이가 등장합니다.
우선 영전은 한자 뜻 그대로 풀어보면 명령의 화살이라는 뜻인데, 국왕이나 장수가 명령을 전할 때 사용하는 화살을 의전용으로 쓴 것입니다.
관이는 전쟁터에서 군율을 어긴 군사를 사형에 처할 때 사용하던 것인데 국왕이나 장수가 가진 생사여탈권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훈련대장 좌우에는 각각 한 쌍의 차지집사가 있는데 이들은 각 궁방의 일을 맡아보던 사람입니다.

훈련대장의 바로 뒤에는 훈련도감의 2인자인 중군이 따릅니다.

 

  1. 정가교: 임금의 가마 주변

훈련대장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사람은 금군별장으로 국왕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무관의 최고지휘관입니다.
그래서 금군별장의 등장은 곧 바로 뒤쪽에 국왕의 행렬이 뒤따른 것을 의미합니다.

금군별장 뒤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인 어보를 실은 어보마가 등장하는 것으로도 임금의 가마인 정가교가 곧 등장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가교에 등장하기 전에 자궁의롱마와 수어사가 먼저 등장합니다. 자궁의롱마는 자궁, 즉 혜경궁홍씨의 의복을 넣어서 보관하는
옷농을 싣고가는 말이며, 수어사는 글자 그대로 임금을 지키는 관리를 말합니다.

이들 뒤로 드디어 임금의 가마인 정가교가 등장합니다. 임금의 가마인지라 화려한 깃발을 든 깃발부대와 의장행렬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들 중 대표적인 의장품을 살펴보자면 정가교 뒤를 따라오는 둑과 용기를 들 수 있습니다. 둑기는 임금의 가마 또는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던
큰 의장기로 삼지창 밑에 붉은 털 술이 달려있는 모습입니다. 둑기 바로 뒤에 등장하는 용기는 임금이 거둥할 때 둑기 다음에 서는 큰 기로
각 영의 군대를 지휘할 때 사용합니다.

용기의 바로 뒤에는 이 행렬속에서 최대규모의 취타부대가 따르고 있는데 의궤에서는 무려 3쪽을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취타부대를 이어 다시 깃발부대가 행진하고 있습니다.

 

  1. 자궁가교: 자궁(혜경궁홍씨) 가마와 실제 정조임금의 주변

임금의 가마 정가교의 후미 취타부대와 깃발부대의 뒤를 이어 임금의 식사를 담당하는 수라가자가 나옵니다. 그 뒤를 총융사가 뒤따라고 있지요.
총융사는 조선후기 5군영 중 하나인 총융청의 으듬 벼슬로 종2품에 해당됩니다.

총융사 뒤에는 드디어 대비인 혜경궁홍씨의 가마행렬이 등장합니다. 정조는 자신의 가마인 정가교를 타지 않고 어머니 가마인 자궁가교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행차의 중심인물인 자궁과 임금의 행렬이 합쳐져서 자궁가교 부분이야 말로 반차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들의 주변에는 대비와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대규모의 군사들이 등장합니다.

대비와 임금이 지나간 뒤엔 임금의 누이동생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의 가마가 따라옵니다. 군주들 외에도 혜경궁홍씨의 초대손님인 외빈들도 보입니다.

 

  1. 장용대장: 장용영의 주력부대 주변

왕과 대비를 포함한 행렬의 핵심부분이 자나간 후반부를 당당하게 채우고 있는 것은 정조의 든든한 오른팔인 장용영입니다.
앞서 나온 별기대와 마찬가지로 장용위도 편대를 이루어 행차하고 있는데 84명인 별기대에 비해 96명으로 규모가 더 큽니다.
마찬가지로 의궤에서는 10명으로 줄여 그렸지만 청계천에서 그 위용을 볼 수 있습니다.
장용위 뒤로 이 행렬에서 정조 다음으로 가장 큰 규모의 의전을 대동한 장용대장이 등장합니다. 이론상 앞서 나온 훈련대장과 장용대장은
같은 등급이지만 반차도에서 장용대장 주변의 의장들로 장용영에 대한 정조의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1. 도승지와 병조판서: 행렬 후미를 따르는 문무백관 주변

장용영의 행렬의 뒤를 이어 반차도의 후미대열이 행진합니다. 후미대열에는 일반 행정일을 담당하는 관리들과 임금의 가마 뒤를 호위하는
가후금군이 따릅니다. 정조반차도의 후미대열 중 특이한 점은 바로 병조판서의 존재입니다. 당시 정권의 실세이면서 일국의 병권을 쥐고 있는
병조판서를 행렬의 가장 뒤에 배치함은 물론 의전도 별볼일 없습니다. 이는 당시 병조판서가 누군지를 알면 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인데요.
당시 병조판서였던 심환지는 정조의 눈밖에 난 사람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이 정당하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정조의 눈에는 좋아 보일 리가 없죠. 하지만 정조는 단순히 적으로 삼기보단 중요한 정치문제는 함께 논의하며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합니다.

 

병조판서를 끝으로 행렬은 마무리가 됩니다. 정조의 화성행차는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한 나들이였지만 화성설계와
더불어 정조가 시행한 그간의 업적들을 과시하고 앞으로의 개혁에 더욱더 박차를 가하기 위함이 실제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은 수원화성 축성 220주년을 기념하는 수원화성 방문의 해입니다. 다가오는 10월 8~9일, 양일간에 걸쳐 서울시와 수원시가 함께 정조의 능행차를 재현합니다.

가는 길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지만 정조가 서울에서 화성까지 행차하면 느꼈을 자부심을 생각하며 정조가 품었던 원대한 꿈의 길을 책과 함께 따라가보는 건 어떨까요?

 


 

목차

머리말 004

 

제1장 – 원행을묘정리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란? 10

현륭원이란? 14

원행이란? 18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구성? 20
8책구성
권수는 첫째 권을 가리킨다
택일
군령
화성행차 8일간의 주요일정과 화성행행도병
화성에서 환궁하는 일정
좌목

제2장 – 반차도

반차도란? 69

화성원행반차도 72

정조반차도
경기감사 77
훈련대장 102
정가교 156
자궁가교 200
장용대장 237
도승지와 병조판서 257

부록
청계천 정조반차도 도자벽화 283
컬러링북 312

저자 소개

글•최동군(崔東君)
다음, 네이버, 페이스북 닉네임: 동쪽임금(東君을 풀어씀)

강원도 원주에서 육군 보병 장교 최준호 대위와 김주자 여사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나 1973년 부산 연제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동해중학교,
동인고등학교를 거쳐 1991년 연세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문화와 역사에는 특별한 지식이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었음.
그러던 중 1997년 태어나서 처음 참여하게 된, 2박3일간의 경주문화답사에서 거의 신내림에 가까운 큰 문화적 충격 및 감명을 받았고 그 후로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해 독학으로 집중 공부함. 또한 평소 “배워서 남 준다”라는 소신으로 많은 문화답사 강좌 및 모임을 통해 주변의 지인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와 역사를 전파하고 있음.

유튜브(YouTube)에서 ‘최동군’으로 검색하면 <답사방법론 12가지>, <음양오행과풍수>, <궁궐>, <불교 및 사찰>, <조선왕릉> 등 다수의 특강 동영상을 볼 수 있음.

2013년부터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 ‘문화해설사 입문’ 과목을 강의중이며 2016년부터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중.

저서로는 ‘현장학습 1번지 국립고궁박물관(2016년)’, ‘답사여행 1번지 경주(2016년)’, ‘문화재 속 숨어있는 역사(2015년)’와 더불어 ‘나도 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다’
시리즈로 ‘궁궐편(2011년), 사찰편(2012년), 북한산둘레길편(2013년), 능묘편(상, 하권/2014년)’이 있고, 계속해서 후속 문화재 시리즈를 집필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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